
명절 때마다 아기를 데리고 가족 모임에 나가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아기 손을 잡고, 볼을 건드리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미는 순간입니다. 저도 그때마다 속으로만 불안을 삼켰던 기억이 납니다. RSV(RS 바이러스)가 생후 2세 이전 아이 100%에게 한 번은 감염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그 불안이 근거 없는 예민함이 아니었다는 걸 확신하게 됐습니다.
RSV가 위험한 이유, 고위험군이라면 더욱
RSV(Respiratory Syncytial Virus)란, 영·유아의 하기도 감염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호흡기 바이러스입니다. 여기서 하기도란 기관지와 폐를 포함하는 기도의 아래쪽 부분을 의미하는데, RSV는 바로 이 영역을 직접 공격하기 때문에 콧물보다는 쌕쌕거리는 호흡음이 특징적으로 나타납니다.
전 세계 2세 미만 영아의 급성 호흡기 감염 원인 중 약 60%가 RSV인 것으로 보고되어 있습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WHO).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저도 꽤 놀랐습니다. 감기라고 뭉뚱그려 넘어가는 질환 중 상당수가 사실은 RSV일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대부분의 성인은 RSV에 감염되어도 가볍게 지나가지만, 2세 미만의 아기에게는 모세기관지염이나 폐렴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모세기관지염이란 폐로 이어지는 가장 가는 기관지 가지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으로, 영아에게서는 호흡 부전까지 이어질 수 있어 신생아 중환자실(NICU) 입원의 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특히 조심해야 할 아이들이 있습니다.
- 재태주수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미숙아
- BPD(기관지 폐 이형성증)를 경험한 아이 — 폐 발달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RSV 감염 시 빠르게 중증으로 악화될 수 있습니다
- 선천성 심장 질환을 가진 아이
- 생후 12개월 미만의 모든 건강한 영아
BPD(기관지 폐 이형성증)란 미숙아가 인공호흡기나 산소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폐 조직이 손상되어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아이들은 호흡기 자체가 취약하기 때문에 RSV에 노출되면 중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일반 아기보다 훨씬 높습니다.
니르세비맙, 한 번으로 한 시즌을 버티는 항체
RSV를 막는 수단으로 현재 가장 주목받는 것이 니르세비맙(Nirsevimab)입니다. 니르세비맙이란 RSV에 대한 단클론 항체로, 쉽게 말해 아기 스스로 항체를 만들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만들어진 항체를 직접 주입하는 방식입니다. 백신이 아닌 수동 면역 제제이기 때문에 접종 즉시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전에 사용되던 팔리비주맙(Palivizumab, 제품명: 시나지스)은 한 달에 한 번, 총 다섯 번을 맞아야 했습니다. 반감기가 짧아 항체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반복 접종이 불가피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니르세비맙은 롱액팅(long-acting) 항체로 반감기가 훨씬 길어 단 한 번의 접종으로 한 시즌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출처: 대한소아과학회).
접종 시기는 RSV가 주로 유행하는 10월부터 3월, 이른바 RSV 시즌에 맞춰야 합니다.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맞히면 역가가 가장 높은 5~6개월 동안 시즌을 통째로 방어할 수 있습니다. 10월이나 11월에 태어난 아기라면 태어나자마자 바로 맞히는 경우도 있고, 4월생이라면 10월까지 기다렸다가 시즌 직전에 접종하면 됩니다. 접종은 생후 12개월 미만의 모든 영아에게 권고되며, 건강한 아이의 경우 평생 한 번으로 충분합니다. 비용은 병원마다 다르지만 대략 50만 원 내외로,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한 시즌만 쓰는 일회성 지출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고려해볼 만합니다.
예방수칙, 신생아는 혼자 외출하지 않는다
여기서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RSV 예방을 이야기할 때 많은 분들이 "아기를 밖에 데리고 나가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RSV의 유일한 숙주는 사람이고, 바이러스는 비말(침방울)을 통해 전파됩니다. 신생아는 스스로 외출하지 않습니다. 바이러스를 집 안으로 가져오는 건 어른이고, 형제자매이고, 방문객입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이 실제로 가장 어려운 지점입니다. 아기 손을 만지려는 어른에게 "손 좀 씻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볼에 얼굴을 들이미는 어른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유난 떤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그 말을 결국 삼키고 집에 돌아와 혼자 불안해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특히 첫째가 어린이집을 다니고 둘째가 신생아인 가정이라면 더 주의가 필요합니다. 어린이집에서 가볍게 묻혀 온 콧물이 면역 체계가 완성되지 않은 신생아에게는 모세기관지염이나 폐렴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RSV 예방에서 정작 중요한 건 다음과 같습니다.
- 아기를 만지기 전 손 씻기를 당연한 기준으로 정해둘 것
- 외부 활동을 다녀온 형제자매와 신생아의 접촉은 씻은 후로 제한할 것
- 방문객, 특히 어린 아이를 동반한 방문객에게는 미리 양해를 구할 것
- 명절이나 대소사에서 생후 12개월 미만 아기 노출은 가급적 피할 것
이제는 아기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말은 미리 부드럽게 해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아기를 예뻐해 주지만, 아기가 아프고 난 뒤의 몫은 부모가 오롯이 감당해야 합니다. 부모가 기준을 세워야 아이를 지킬 수 있습니다.
RSV는 피할 수 없는 바이러스지만, 중증으로 가는 것은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생후 12개월 미만의 아기를 키우고 있다면 지금 다니는 소아과에서 니르세비맙 접종 시기를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9월 말이 기준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아기를 둘러싼 어른들의 위생 습관을 점검하는 것이 첫 번째 예방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아기의 건강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항은 반드시 담당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